기사전체보기

[뉴스레터 43호] 여름철 길가에 죽은 뒤영벌이 늘어나는 이유는?

작성자 :
관리자

글로벌 생물다양성 동향 Vol. 43

여름철 길가에 죽은 뒤영벌이 늘어나는 이유는?

여름철 보도블록이나 길가에서 죽은 뒤영벌(bumblebee)을 발견하는 일이 있다. 이는 뒤영벌의 짧은 수명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최근 폭염과 살충제 사용, 서식지 감소, 기후변화 등도 벌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뒤영벌은 여러 개체가 군집을 이루어 생활하는 사회성 곤충이다. 군집을 유지하는 일벌의 수명은 약 4~6주로 비교적 짧아 여름철에도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건강한 일벌들이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연사한 일벌의 사체를 둥지 밖으로 옮기기 때문에 주변에서 죽은 벌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자연적인 생활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환경적 요인들이 벌의 생존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폭염이 뒤영벌의 생존을 위협한다
극심한 더위는 벌에게 열 스트레스(thermal stress)를 일으킨다. 장기간 고온에 노출되면 벌의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번식과 비행, 먹이 탐색 능력까지 저하시켜 장기적으로 개체군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벌과 같은 사회성 곤충은 기온이 높아지면 날개를 부채질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둥지 내부의 온도를 낮춘다. 비행 중에는 몸 안에서 열을 이동시키며 체온을 조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고온에서는 이러한 체온 조절에도 한계가 있다.
2026년 6월은 잉글랜드에서 관측 사상 가장 더운 월로 기록됐으며, 영국 전역에서 두 번째로 더운 월이었다. 기후변화로 폭염 위험이 커지면서 고온이 벌에게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살충제와 서식지 감소도 주요 위협
인간 활동도 벌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요인이 살충제와 제초제다. 일부 화학물질은 벌을 직접 중독시켜 죽게 하거나 생존과 번식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유기인계, 합성 피레스로이드계, 페닐피라졸계 등의 살충제는 벌을 마비시키거나 죽게 할 뿐만 아니라 방향을 찾고 이동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초제는 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먹이가 되는 식물을 제거함으로써 간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흔히 잡초로 여겨져 제거되는 식물인 민들레는 벌에게 중요한 꿀 공급원이다. 먹이가 되는 꽃이 줄어들면 벌이 충분한 에너지를 얻기 어려워진다.
서식지 감소 역시 문제다. 주택 개발과 집약적 농업, 도로와 각종 기반시설 건설 등 으로 토지 이용이 변화하면서 벌이 먹이를 찾고 둥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기후변화로 벌과 꽃의 ‘생태 시계’도 어긋나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벌과 식물의 생활 주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현상이 ‘계절적 불일치(phenological mismatch)’로 서로 의존하는 생물의 활동 시기가 맞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기온 변화로 식물의 개화 시기가 앞당겨졌지만 벌의 활동 시기는 이에 맞춰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벌이 평소보다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났는데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면 충분한 먹이를 구할 수 없다. 벌과 꽃의 활동 시기가 어긋나면 벌은 먹이 부족을 겪고, 식물 역시 수분 기회를 잃을 수 있어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의 멸종위험 야생 벌, 10여 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
이러한 위협이 누적되면서 야생 벌의 보전 상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 멸종위험에 처한 것으로 평가된 야생 벌은 2014년 77종에서 현재 최소 172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이는 평가 대상 종의 약 10%에 해당한다. 벌의 감소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수분매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곤충은 분해와 해충 조절, 다른 동물의 먹이 제공 등 다양한 생태계서비스를 제공하며, 벌은 그중에서도 식물과 농작물의 수분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벌을 비롯한 수분매개동물의 감소는 자연생태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농작물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식량안보와도 연결된다.

벌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살충제와 제초제 등 화학물질의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고, 벌이 먹이와 서식처를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원이나 생활 주변에 다양한 토종 꽃식물을 심거나 잔디밭 일부를 깎지 않고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벌에게 작은 서식처를 제공할 수 있다.
농산물을 구매할 때도 생산 과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 있다. 반드시 유기농 제품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가능한 경우 지속가능하고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식품을 선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더운 날 길을 가다 기력이 떨어진 벌을 발견했다면 응급조치로 설탕과 물을 2대 1 비율로 섞은 설탕물을 소량 제공할 수도 있다. 주변에 꽃이 있다면 안전한 범위에서 벌을 꽃이나 그늘진 장소로 옮겨주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벌 알레르기가 있거나 쏘일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직접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여름철 길에서 발견되는 죽은 뒤영벌은 일부는 자연스러운 생활사의 결과다. 하지만 폭염과 화학물질 사용, 서식지 감소, 기후변화가 동시에 벌의 생존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계절적 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작은 벌들이 보내는 신호는 수분매개곤충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일이 결국 생태계와 우리의 식량 체계를 지키는 일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